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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맥체인 성경읽기

시편 73편 악인의 형통에 대해서 실족할 뻔 한 성도의 고백의 시이다. 악인이 형통하여 교만하다(이것은 시1:1,3절과 모순된다). 이로 인해서 날마다 죄를 고백하는 자가 허탄해진다. 그러나 성소에서 깨닫는다. 악인의 종말을 본다. 이렇게 외적인 것으로 탄식하는 모습을 꿈을 꾼 것에 비교하고, 또한 깨닫지 못하는 짐승으로(시49:12, 20) 비교한다.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고, 주를 멀리하는 자가 망한다.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것, 그의 말씀과 동행하는 삶 자체가 행복이다. * 주를 멀리하는 자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대조가 된다(27-28). 이런 대조는 1절의 고백을 가진 경건한 자들이 마침내 성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17). 더보기
에스겔 25장 열국에 대한 심판이 선고되기 시작한다. 먼저 암몬은 유다가 포로가 될 때 기뻐한 죄로 동방의 침략을 받는다. 모압과 세일은 유다 족속이 이방과 다르지 않다고 함으로 역시 동방에게 삼키게 된다. 에돔과 블레셋은 유다 족속을 원수로 취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가 되신다. 내 원수라 부르신다. * 나라들을 형벌하는 하나님의 방편을 "손을 네 위에 펴서", 혹은 "이스라엘의 손으로" 라고 하신다(7,13, 14, 16). * 암몬과 모압과 세일을 치는 동방은 누구인가? 더보기
고린도후서 11장 외모를 보는 고린도 교회와 스스로 자랑하는 거짓 선생들과 대조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이런 약한 것마저 자랑하는 자신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어리석은 일 즉 자랑을 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께 중매하고 염려하는 열심에서 나온 것이다. 고린도가 포함된 아가야 지방에서 바울 사도는 삯을 받지 않고 봉사하였다. 이는 거짓 선생들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약한 것 즉 고난의 목록들로서 사도는 자신을 증명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한다. *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채움을 위한 것이다. 복음이 막히지 않고 드러나기 위한 것이다. 더보기
사무엘하 18장 다윗의 군대가 에브라임 수풀에서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친다. 압살롬은 상수리 나무에 그의 머리가 걸려서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압살롬의 아름다운 머리가 죽음을 부른다(9, 삼하14:26). * 압살롬을 군사가 죽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럼에도 요압이 죽인 근거는? * 또한 여호아하스는 왜 먼저 다윗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했는가? 압살롬의 죽음보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인가? 왕의 슬픔보다 승리로 위로하는 것인가? *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마음이 심히 아파하였다. 그리고 대신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표현의 의도는? 더보기
시편 72편 주의 공의를 왕에게 주시기를 기도한다. 의와 공평이 주의 보좌의 기초이다(97:2). 주님의 통치를 위임 받은 왕도 공의가 있어야 한다. 공의의 중심은 항상 약한 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압박과 강포와 같은 힘으로부터 약한 자를 지켜내는 것이 왕의 공의로운 통치가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풍성한 곡식을 위한 비가 있고, 평강이 있고, 또한 열국으로부터 조공의 풍성한 복이 있다. 이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기이하심을 찬송하라. 더보기
에스겔 24장 녹슨 가마의 비유를 하여서 피를 흘린 성읍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온전히 끝나기 전에는 깨끗하여 지지 않는다. 새 언약을 통한 용서가 있음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이 나고 회복되어 귀환한다. 이런 비유는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날 주어졌다(2), 이 날에 성소까지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도록 하여 예루살렘과 성소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실천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다(24). 반드시 망해야 할 성소가 있는 성읍 예루살렘이다. 더보기
고린도후서 10장 바울 사도는 외모를 중하게 여기는 고린도 교회를 경고한다(7). 자기를 스스로 칭찬하는 자들과 다름을 비교한다(12). 바울 사도가 떠났을 때 글의 담대함과 만났을 때 유순하다. 그러나 담대함은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대적하는 것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가 주신 권세를 따라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기 위해서 담대하게 고린도 교회를 책망한다.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주께서 부르신 범주를 따라서 고린도에까지 이르렀고 더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 17절의 주안에서 자랑한다는 말은 13절에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서 사역하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고전1:31, 렘9:22-24절의 인용). 더보기
사무엘하 17장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당장 기습하여 다윗을 제거하는)보다 후새의 계략(나중에 군사를 모집하여 다윗 진영을 몰살)을 선택한 것은 여호와의 계략이자 명령이다(14). 아히도벨은 결국 자결하고, 다윗은 밤새 요단을 건너 마하나임에 이른다. 거기서 바르실래 일행의 환대를 받는다.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셨다(표준새번역은 좌절시키셨기 때문이다)고 할 때 누구에게 명령하셨는가? 계력, 혹은 모략은 지혜에 속한다. 여호와가 주체임을 말하는가? 더보기
시편 71편 저자는 평생에 심한 고난을 가지고 있다(20). 모해를 받고(24), 악인의 손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손에서 피하도록 요청한다(4). 원수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10).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움과 바위와 반석 그리고 소망이 되심을 확신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 모든 자리에서 건지시고 속량해 주심을 찬양한다. 정죄함이 없다. 더보기
시편 70편 가난하고 궁핍한 자리에서 수치와 무안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주시기를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셔서 조롱하는 자들이 물러가게 하소서. *2절에 내 영혼을 찾는 자와 4절에 주를 찾는 자가 대조가 된다. 전자는 수치와 무안을 당하지만 후자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