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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맥체인 성경읽기

에스겔 30장 계속된 애굽에 대한 심판의 신탁이다. 이 날은 여호와의 날이다(3). 애굽의 교만한 권세에 대한 심판이다(6,18). 바벨론 왕의 손을 견고하게 하사 애굽을 심판하시고 넘겨주실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알게 하신다(8, 19, 26). * 20절에 다시 연대기가 나온다. 열한째 해 첫째 달 일곱째 날에 바로 왕의 팔을 꺾고, 대신에 바벨론 왕의 팔을 견고하게 하신다. 더보기
갈라디아서 3장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성령을 주심으로 확인했는데(2, 5, 14),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갈라디아 교회의 어리석음을 책망한다. 믿음과 율법이 대조가 되는 것은 맞다. 믿음이 오기 전과 후가 대조가 된다(23, 25). 그러나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지는 않는다. 죄로 인해서 율법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로서 믿음이 주어져야 한다. * 여성 안수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28절의 내용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누구에게나 미쳐진다는 것을 말하는 본문이다. 이것이 더 확대되어서 직분의 차별이 폐하는 것으로 갈 수 있을까? 간다면 그 차별은 율법이다. 직분이 은사의 차이와 연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의 신분적 차이가 아니라면 직분의 차이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더보기
사무엘하 23장 공의와 경외함으로 통치하는 자 다윗의 집을 위해서 여호와께서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음을 노래한다. 반면에 사악한 자는 가시나무 같다고 함으로 불의한 왕을 삿9장에서 아비멜렉에 대한 비유를 연상시킨다. 8절 이하의 다윗의 용사들의 명단은 그가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하는 증거이다.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백성들을 다스림을 말한다. 첫 세 용사가 언급되는데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이다. 그리고 아비새가 이들의 우두머리이지만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용맹이다. 그리고 나서 다양한 용사들이 언급된다. 더보기
시편 78편 여호와께서 영예와 사적과 증거와 법도를 세우신 것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한 비유였다. 그러나 실제로 자손들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믿지 않았다.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그의 자손들이 배반하였다. 출애굽 이후에, 그리고 가나안의 정착과정에서 배반하였다. 하나님께서 많은 일과 구원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절하였다. 이제 다시 유다와 시온의 다윗 집을 선택하셔서 기회를 주신다. 이것이 2절의 비유이고 비밀이다. * 2절의 비유라는 표현이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경고이다. 이것은 마13장을 비롯해서 비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보기
에스겔 29장 애굽에 대한 심판. 나일의 범람이 주는 비옥함을 통해서 얻는 오만을 책망한다. 3,9절에 이 강은 내것이라. 내가 만들었다라는 말을 꺾으신다. 하나님께서 나일을 황폐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신다(16). 바벨론을 통해서 애굽을 치신다. * 1절에 열째 해 열째 달 12일이다. 그리고 17절에 27째 해 첫째달 1일에 바벨론을 통한 심판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순서도 두로에 대해서 열 한째 해 어느 달이다(26:1). 그리고 녹슨 가마 예루살렘의 말씀이 아홉째 열째 달 열째 날이다(24:1). 이런 연대기적 섞임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더보기
갈라디아서 2장 갈라디아 교회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한다. 자신이 전한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형성되었고, 삼년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야고보에게 인정되고(1:18이하), 이제 14년 후에 다시 게바등과 만나서 영역을 분할한다(9).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강한 정통성을 주장한다.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사도의 직분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함께 정리하였다. 공통의 관심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이다(10). 자유하게 하는 복음의 진리를 무너뜨리는 베드로의 행위를 책망한다. 복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다. 이는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이다. * 13절에 바나바도 그 외식에 휩쓸렸다(1절에 동행). 이런 바나바와 나중에는 마가의 문제로 헤어지기도 한다. * 17절의 해석? 결코 그렇수.. 더보기
사무엘하 22장 다윗이 생애를 정리하면서 부른 노래,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반석이시며(2,3,31,32,33,47), 힘이 되고 방패가 되셨음을 고백한다. 시18편과 표제까지 동일하다. 시내산과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 등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의 말씀에 진실하게 의지하고 행하는 다윗에게도 구원과 인자함을 베푸신다. * 여호와께 부르짖음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을 신뢰하는 증거를 얻어야 한다. 그것이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원수에게는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않으신다(42). 더보기
시편 77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끊어진 것과 같은 환난 날에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하는 고통 속에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10). 과거에 이스라엘을 시내와 바다와 광야에서 양떼와 같이 인도하신 것을 기억한다(11).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도록 인도하시고(20) 주의 팔로 속량하셨다(15). 이제 비록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지만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기도하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깨닫는다 * 기억 혹은 생각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3, 5, 6, 11). 기도와 삶의 근거가 된다. 더보기
에스겔 28장 두로에 대한 심판이 계속된다. 심판의 이유는 교만이다. 바다를 통한 무역으로 재물의 축적되자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라'고 한다. 이에 두로가 인생뿐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심판하신다. 아름다움과 영화가 교만과 지혜를 더럽혔다. 지혜와 총명으로 부하게 되자 이것이 타락하였다. 시돈에 대한 심판은 그들이 이스라엘에 가시가 되었음을 24절이 말한다. 시돈과 두로의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안식이 약속된다(25-26). * 영광과 거룩을 나타내는 방식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는 것이다. 죄를 행한 여러 나라들에게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이 땅에서 회복과 안식을 누리게 하심이 거룩을 나타냄이다. 더보기
갈라디아서 1장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주는 대속의 복음을 소개함으로 시작한다. 이는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이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전한 복음, 즉 바울이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과 다른 것을 증거한다.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은 계시로 받은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의 계시이다. 게바를 만나서 자신의 복음을 나누려고 했지만 야고보를 만났다. 이로 복음의 진정성과 정통성을 확보한다. * 24절에 하나님께 영광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바울을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에 대한 고백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