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1일 토요일 SFC 날마다 주님과 묵상 창세기 18장 1-15절
1.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브라함이 발견한 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고, 저들을 영접하는 아브라함의 행위는 무엇인가? 왜 접대하는가?
2) 대접을 받은 후에 사라를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
3) 사라가 웃은 이유는 무엇인가?
4) 여호와의 답변은 무엇인가?
5) 사라의 부인에 대해서 여호와의 웃었다는 확인은 무엇을 말하는가?
2. 질문에 대한 고려점들
1) 아브라함을 방문한 셋의 정체는 3절에서 아브라함이 주라고 부른다. 13절에서는 저자의 관점이지만 '여호와'라고 부른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다. 이것을 신약 히13:2절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라고 말한다. 천사 혹은 여호와의 사자들이 여호와를 대신한 권위를 행사하기에 적절한 표현이다(참고 창19:2). 문제는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들을 여호와의 사자로 알았는가이다. 히브리서의 표현은 부지중이라고 한다. 알지 못하는 중에 천사를 대접했다. 물론 히브리서의 서술이 아브라함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그네를 접대했다는 사실인데, 나그네가 지닌 함의는 크다. 창18장과 19장은 같은 단락에 속한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도 모두 나그네를 대접한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얻어 구속되고, 롯은 소돔성에서 구속된다. 가나안의 죄악이 아직 가득하지 않다는 창15:16절의 진술은 나그네된 아브라함을 받아준 가나안에 대한 평가가 들어있지 않을까? 가장 약한 자들을 외면한 죄가 크다는 말씀.
2) 사자들이 대접이란 관문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불러서 할례의 언약전에 준 약속을 확인한다.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을 것을 다시 확인한다(10, 창17:19). 상속자를 주어서 큰 민족의 발판을 삼으려고 함이 무슨 목적인지를 보여준다. 의로운 나라를 세우시는 목적이다(18:19). 그 의와 공도의 핵심이 나그네에 대한 대접이다. 소자에 대한 관심이다.
3) 사라는 기가 막힌다. 웃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때문에. 그러나 진정으로 웃게 하신다. 노쇠함과 늙음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방해하지 못한다.
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하심이 있겠느냐는 답변에서, 불가능한 것이 혹은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로 많이 번역된다. 직역은 놀라운 것이겠느냐? 거기에 쓰인 단어가 사9:6절에 기묘자에 해당한다.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전능한 하나님은 번성과 관련되는데(창17:1절 참고), 언약의 성취를 방해하는 어떤 요소도 극복하실 수 있음을 선언하신다.
5) 웃은 사라가 웃었다는 사실을 꼭집어서 확인하신다. 그만큼 당사자들이 받을 수 없는 만큼의 놀라운 일들이 시작된다. 언약이 이루어지는 사건들이다. 복음이 지향하는 세상을 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신 같은 말씀이다.
3. 찬송과 감사
사라에게 아이를 주어서 번성의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 현실에 깊이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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