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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SFC 날마다 주님과

창세기 17장 15-27절

창세기 17장 15-27절.hwp

2014년 1월 31일 금요일 SFC 날마다 주님과 묵상 창세기 17장 15-27절

1. 묵상을 위한 질문
1) 왜 사래의 이름을 사라라고 바꾸었을까?
2) 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3) 사라에게 나는 자식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설정하시는가?
4) 아브라함이 할례를 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2. 질문에 대한 고려점들
1)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도록 하셨다(5). 마찬가지로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불리운다. 이름의 변경은 새로운 정체성을 말한다. 언약을 담지하는 새로운 인간됨을 말한다. 이것을 할례라는 형식과 더불어 확립한다. 로마교가 세례명을 주는 일은 이런 전통과 연결된다.
사라의 경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에서 아이를 낳게 하신다. 이것은 죽은 태를 여시는 것이고, 죽음을 부활로 인도하는 것이다(롬4:17-20). 낳은 이삭을 통해서 온 세상의 나라들이 복을 얻게 되는 길을 열게 된다.
2) 성경에 복을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진행되도록 하신다는 의미이다. 복이 하나님의 의도와 관계없이 복을 받는 자의 의도만이 존중되는 것은 잘못된 길이다. 사라에게 복을 주어서 그 태가 열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나라의 방식과 다르게 세상에 존재하게 됨을 알린다. 이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3)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언약은 이삭과 맺어진다. 이스마엘이 번성을 누리지만 그러나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동력은 언약에 참여해야한다.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나게 되는 과정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죽은 태를 열어서 이삭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모든 번성한 백성들에게 필요하다. 이삭 자식의 육체의 자손들도 이것을 믿어야 한다. 이삭을 통한 '언약' 자체가 중요하다. 방점은 언약에 있고, 말씀에 있다. 단지 이삭을 통해서 주어진 언약이다. 이삭 자체의 오만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모든 언약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4)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사라를 통해서 이삭을 주시겠다고 했을때, 자기의 의견을 취소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는 표시로서 언약의 증거인 할례를 온 가족에게 행한다.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존중이고 믿음이다. 할례 행함은 진정한 믿음의 증거이다.

3. 찬송과 기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래를 불러서 만민의 복을 삼으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결핍과 부족으로 가득찬 삶을 부르셔서 세상의 위로가 되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신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