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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SFC 날마다 주님과

창세기 10장 21-32절

 창세기 10장 21-32절.hwp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SFC 날마다 주님과 묵상 창세기 1장 21-32절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1. 본문 구절 해설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21] 셈을 에벨 자손들의 조상이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또한 야벳의 큰 형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큰 형을 동생들 뒤에 소개할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보통 에벨과 히브리의 연관성에서 찾는다. 같은 자음으로 구성되었고, 또한 셈의 자손 가운데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하여 하란에 정착한 데라를 이어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아발] 가나안으로 들어왔다. 언약을 이어가는 형제를 마지막에 소개하는 것은 창세기의 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족보를 이어서 이삭의 족보가 소개된다. 마찬가지로 에서의 족보가 나오고 야곱의 족보가 나온다. 앞의 족보들이 번성을 이어간다면 후자는 언약적 흐름을 이어간다. 번성 자체로 부정적이지 않다. 단지 그 번성이 언약과 연결되어야 유의미하다고 본다.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25] 에벨의 아들이 둘이 있는데, 벨렉과 욕단이다. 벨렉은 나누었다는 동사[파락]과 같은 어근이다. 노아로부터 4세대인데, 이는 야벳의 경우도 이 때에 나라들이 나누어진다. 단지 함은 7세대가 지나서 분리된다. 이것은 창11장의 바벨 사건과 연관된다. 따라서 11장의 바벨 사건은 10장의 민족 분리 사건의 원인에 대한 사건적 설명이다.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25] 아우인지 형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벨렉의 이름이 먼저 거론되고 나중에 욕단이 언급되기에 형제라는 말을 동생으로 본다. 물론 욕단이란 단어가 카탄이란 작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보고 동생으로 볼수도 있다. 벨렉을 소개하면서 세상이 나누어진 사건만을 말하고 그 자녀들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 자녀들에 대한 것은 11:10절에 다시 언급되는 셈의 족보에서 언급된다. 그러나 욕단의 경우는 자녀들이 길게 언급되고 거주지도 언급된다.

홍수 후에…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32] 11장의 결론이다. 그리고 11장에 나오는 명단이 70이다. 이는 세상 나라들 전체를 표현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신32:8절을 근거로 이 70을 해석한다. 이스라엘 자손이란 표현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lxx과 사해사본이 표기한다. 이는 민족들의 수호 천사 개념으로 이해하는 전통인데, 다니엘서에서도 뒷받침을 한다[단10, 12장]. 홍수가 지나갔지만 아직도 남은 죄는 니므롯과 같은 이를 배출시키고 바벨 사건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백성들이 나뉘게 된다. 나누어지는 기준들이 31절에 보니 족속[혈통], 언어, 지방[지역], 나라[권력관계] 등이다. 그런데 11:1절에서는 언어가 하나라고 한다. 따라서 11장의 바벨이 10장의 진술보다 앞선다. 창세기가 연대기적 순서의 서술은 아니다.

2. 본문의 흐름
셈의 족보를 기록하는 것은 앞의 두 형제, 야벳과 함을 연속한다.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세상이 번성되었음을 말한다.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것을 세상이 인식하든 하지 않든 세상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죄가 방해하기에 이를 극복하면서 창조 세계는 회복될 것이다. 셈을 에벨 자손의 조상이라고 표현이 히브리 사람들을 언급하려는 의도가 맞다면 셈의 하나님이 되신다는[창9:26] 노아의 언약이 고려된 족보 서술방식이다.
세상이 나누어졌다는 것은 죄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홍수와 같은 심판을 불러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다. 그럼으로 셈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은혜가 미치도록 하는 방편이 나라와 민족으로 나눈 것이다.

3. 본문에 대한 질문
셈을 왜 에벨 자손들의 조상이라고 불렀을까?
10:31-32절과 11:1절과의 관계를 살필 때, 어떤 모순이 있고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4. 본문에서 적용으로
땅위에 백성들을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하다. 그러나 그 존귀함에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복에 대한 이해와 고백이다. 성경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역사를 단축해서 기록하는 방식이 족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가지는 애정이 있다. 귀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들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을 담아내는 믿음이 필요하다. 역사와 현실 속에 창조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이해하고 섬기는 삶이 필요하다.
나누어진 세상은 홍수와 같은 심판은 아니다. 철저히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이다. 죄를 억제하기 위한 나눔인 것이 창11장에서 잘 증거된다. 이런 나눔의 극복은 오순절에서 해결된다. 복음으로만 해결된다. 역사와 현실속에서 창조의 회복을 위한 길은 역시 복음이다. 복음이 소중하다.

5. 본문에서 찬송과 기도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복음을 통해서 창조하신 세상을 회복하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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