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문법상 성경은 각 부분이나 전체적으로 영감되었다고 본문을 번역해도 상관 없다. 그렇지만 "유익하니"라는 말의 뒤에 술어가 없으므로, '각 영감된 성경은 유익하다'는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전체 성경' 또는 15절의 '성경들'에 포함되는 '각 성경'이 영감되었다는 두 입장 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관사가 없으므로 'All Scripture'를 말하나, 더 정확하게는 영감이 성경 그 자체(Scripture as such)에 속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본문은 구약을 지칭하지만, 신약도 포함된다. (벧후 3:2) 〔마 2:3; 행 2:36; 고후 12:12; 엡 1:8; 2:21; 3:15; 골4:12; 벧전 1:15; 약 1:2〕
또 감동을 말하는 단어는 수동, 능동으로 다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영감하다' 또는 '하나님으로 영감되다'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수동이 더 낫다. (살전 4:9) 또 베드로후서 1:21에서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 한다.역사적으로도 이렇게 이해되어 왔다.
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벧후 1:21).
이 그리스도의 영은 선지자들 중에 역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증거하셨다(벧후 1:11). 예수님은 직접 구약의 예언들이 당신을 중거하고 있다고 하셨다(요 5:39; 눅 24:27,44) 바울도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로 예수의 일을 권했다(행 28:23).이것들은 다양하지만, 그리스도의 화해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한, 동일한 증거를 한다(고전 15:3). 이를 증거하는 이들도 하늘로부터 오신 성령으로 이 복음을 전한다(벧전 1:12) 구약의 예언도 성령으로 주어졌고, 완성된 복음도 성령으로 전파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두 성령으로 영감되었기 때문이다. 구약이 인용될 때, 성령이 주체로 인용되어 있다(히 3:7 참고). 그리스도도 다윗을 인용할 때, 성령이 말씀하신 것을 가르치셨다 (막 12:36; 마 22:43). 이와 같이 성경은 단일하다. 성경은 그 자체에서 말씀하시는 한 분 하나님을 찾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단일성은 구약을 일차적으로 말하나, 이 증거는 전체 성경에 적용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직접 그 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성령께서 성도 각자와 교회 가운데 살아 계신다.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침투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바를 신실하게 말했다는 것을 증거하여야 한다"(Ⅰ, ⅶ, 4 ). 성령이 천상 교리의 제자들을 만든다.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성경으로 기록하셨다. 하나님은 이 작업의 도구인 인간을 존중하셨다. 인간을 막대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 작업에 임하게 하셨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유기적 영감론'이라 불려진다. 이는 '기계적 영감론'을 대신하는 이론인데, 카이퍼(1837-1920)와 바빙크 등이 주장했다. 그런데 '유기적'이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중심 사상을 표현하는 말인데, 이는 생물학적 용어로서 자기 법칙적 발전과 내재주의의 사상을 담고 있다. 바빙크는 개신교 정통주의의 기계론적인 초자연주의 뿐 아니라, 19세기의 물질주의나 진화론을 이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극복하고 대치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기계적'이라는 말에 비하여 셩경의 신적이고 인적인 요인들을 똑같이 중시할 수 있다고 여겨진 '유기적'이라는 실제로는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성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이것에 아무런 공간도 주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범신론이나 또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 용어는 "인간의 봉사를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이 말씀이심이 손상당할 수밖에 없다." 유기체론은 유기적인 생명력을 성령의 사역과 일치시킨다. 그러나 성령은 성경의 주체이시지 원리가 아니다.
생물학적 범주와 용어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성자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는 계시와 저작이 일치되는 한 , 저작에게까지 해당된다. 성경론은 이처럼 삼위론을 그 배경에 두고 있다. "한 분 하나님이 삼위로 계심을 말하라. 그리하면 성경이 말하는 바가 한 마디로 정리된다."(Ⅰ,ⅷ,5) 성경이 말하면, 우리는 바로 삼위 하나님과 대면하게 된다. 그 분이 우리와 대화하신다. 그 분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므로, 성경은 전체이며, 각 부분은 전체에서 고유한 위치를 가진다. 인격과 인격의 대화, 주도권을 가지신 인격이 말씀을 하시면서 상대자인 인격에게 대답을 요청하시는 이 대화는 결코 생물학적인 범주로 접근할 수 없다. 성령은 영감으로 인간 저자들의 특성들을 보존하시되, 종국적 결과는 당신의 말씀이 되게 하신다. 성경은 합하여 하나님의 한 뜻,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알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다. (계 1:2,9)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이 해당된다면, 성경 독자들에게는 성령의 증거가 있어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칼빈을 따라 성령의 내적 중거라 부른다. 하나님이 직접 (in persona) 성경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이 성경에 대한 가장 최고의 증거이다. 우리도 확신을 인간적 이성이나 판단 또는 추론이 아니라 좀더 고상한 성령의 내밀한 증거에서 찾아야 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영감받아 신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불신자들이 증명하라고 하면,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가 어떤 이론보다 더 탁월하다고 답변한다. 하나님만이 말씀으로 자증하시듯,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로 인쳐져야 우리 마음에 용납된다.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였던 같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사 그들이 신적으로 명령받은 바를 신실하게 선포했다는 것을 설득하신다(Ⅰ,ⅶ.4,5; Ⅰ,ⅸ,3)
먼저 성령은 적대적 세계 속에서 복음 전파와 설교가 승리하도록 인도하신다(요 14,26-27). 성령은 일차적으로 증인이시다(마 10:18 이하; 요 16:13; 행 5:32; 롬 8:16).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말씀에 계시된 것들을 '구원에 이르게 깨닫게' 된다(the saving understanding,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 이와 같이 성령은 성경의 기록뿐 아니라 그 보존에서도 역사하신다. 이는 말씀 바깥의 별다른 독자적 계시가 아니라, 말씀을 깨닫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말한다(엡 1:13). "성경은 나의 인정 이전이나 인정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나의 가슴에서 나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의 인정 근거는 일차적으로 성령의 증거가 아니라, 성경 자체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열광주의가 범한 오류를 재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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