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속성
성경의 속성론은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교 및 신령주의와의 투쟁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권위와 확실성, 충분성과 완전성, 필수불가결성과 명백성이 있다. 우리는 이 속성들을 로마교 뿐만 아니라 현대의 비평학에 대항하면서도 계속 주장하려고 한다.
1) 성경의 권위
로마교도 성경의 권위를 말하나 이를 다시 교회의 권위에 의존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나 교회에 의존적이지 않고 스스로 권위를 가진다. 교회는 선지자와 사도들, 곧 그들의 설교 위에 세워졌다. 전체 성경은 자기 권위를 스스로 말한다. 나아가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증거가 아니라 저자인 하나님의 증거에 의존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 달리 표현하면 영감에 성경의 권위가 기초된다.
'오직 성경'(solascripture)은 '성경 전부'(tora scripture)이다. 성경은 스스로의 해석자이다. (sacrascripture sui ipsius interpres. 벧 1:19, 웨스트민스터 1.9) 예수님은 '기록된 바'로 구약의 권위를 표현하셨다. (마4:4, 6.10 ; 21:13, 26:24 ; 막 7:6 ; 9:12). 사도들은 같은 식으로 권위를 인정받앗다. (행1:20 ; 7:42 ; 13:33 ; 15:15, 23:5 ; 롬1:17 ; 3:10 ;4:17, 12:19 ; 고전 1:19, 2:9 ; 4:6 ; 9:9 ; 고후 8:15 ; 갈 3:10 ; 4:22,27 ; 히 10:7 ; 벧전 1:16 ; 행13:40).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성경은 믿음과 행위의 유일한 규칙이다. 성경의 권위를 주장한다 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모두 조화시킬 수 있는 의미에서 무오성(Inerrancy)도 동시에 주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신뢰성은 논리적인 일관성에 기초하지 않고 신앙적인 신뢰의 문제이다.
성경의 권위는 '육법전서'식의 권위는 아니다. 성경은 계시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무시간적인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시대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일상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뜻이며 결코 노후되지 않는다. 즉 성경은 문맥을 무시하고서 해석될 수 없고, 항상 전체적을 문맥을 고려하면서 해석되어야 한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9)의 지세로 들으면, 그때와 같이 지금도 동일하신 성령께서 계속 말씀하실 것이다. 성경은 쓰여진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scopus)을 존중해야 한다.(롬15:4 ; 딤후3:17 ; 요20:31). 곧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구비하도록 성경은 쓰여졌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권위로써 성경에 계시되었고, 교회에 전수되어 믿음의 순종(롬1:5)으로 교회가 받아 고백하는 것이라면, 이를 거부하는 현대신학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 선택은 성경론과 신론에서 확대, 전개된다. 당신의 말씀은 성경의 통일성을 유도한다.(딤후3:16)
그러나 현대신학은 성경 내의 여러 층이나 전통들 또는 신학들을 상정함으로 성경의 단일성을 와해시키고, 나아가 하나님의 단일성까지도 파괴한다.
2)성경의 필수불가결성
신령주의는 로마교가 말하는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나아가 모든 외적인 권위를 거부하면서 성령의 내적 조명을 강조하고, 성경조차도 외적이므로 필수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들은 성경과 성령을 이원론적으로 대치시킨다. 성경은 진리의 원천이 아니라 참 지식gnosis)에 이르는 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명한 귀결은 셩경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의 교시라 말하는 것은 사실상 이성과 양심의 자연빛을 말한다. 여기에 반하여 개혁은 셩령이 우리를 말씀에다 붙잡아 맨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성령은 말씀과 설교에 당신의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필수적이다.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로마교는 교회가 있는 한, 성경이 없어도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성령의 유익과 열매를 얻으려면, 열심히 성경을 읽고, 들어야 한다. 우리는 로마교에대해서도 성경의 필수성을 주장한다.
3) 명백성
로마교는 성경이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므로, 교회가 성경의 해석자라 자칭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명백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시다 (시 119:105, 130; 벧후 1:19). 이 말씀은 우리 입과 마음 가까이 있다.(롬 10:8; 신30:14) 말씀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주어졌다. 시편95편의 '오늘'은 수많은 세월 뒤에도 '오늘'이며, 지금도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있다.(히 3:7-13).
그러나 현대 비평학은 셩경의 명백성에 근거한 성경의 단일성을 파괴했다. 현대신학은 셩경 안에 서로 상이할 뿐 아니라 떄로는 상치될 수도 있는 '신학들'을 추적하려고 한다. 물론 구약과 신약에 다양성은 나타난다. 이 다양성이 단일성을 추방시키지는 않는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하나의 교훈이 있다(딤전 6:3). 그러므로 다양성의 성경을 이해하는데, 성령의 조명은 필수적이다. 성령은 유일한 자기 해석자이다.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보다는 성도의 자유를 해석에서도 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경을 해석한다. 그렇지만 성령 인도는 백인백색의 성경해석을 무분별하게 조장하지는 않는다. '합당하고 필연적인 귀결'(bona et necessaria consequentia,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은 그 당시의 신령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성경과 무관한 독자적인 성령 인도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4) 충분성
하나님의 구원의 뚯은 성경에 완전하게 나타나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 그러므로 성경의 교리 이외의 다른 교설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로마교는 전통을 앞세워 성경의 충분성을 부인한다. 로마교는 양자를 두 원천으로 삼는다. 그러나 로마교의 주장과는 달리 정경화(正經化)는 사도 시대와 교회 시대를 구분한다. 이로써 사도들의 저작이 아닌 다른 전통들은 규범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을 받아들이나, 성령은 '오직 성경'을 위협하지 않는다. 성령은 성경과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Ⅳ, ⅷ 13).
로마교는 그들의 '전통' 개념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거나 또는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기관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자족적인 기관으로 본다. 이런 전통관에서는 성경의 충분성이 필요하지 않다. 현금의 로마교는 교황을 정점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신앙과 신학의 일차적 자료이다. 결국 가르치는 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전통이 성경에 근거해 있고, 성경에서 나왔음을 확신했다. 그러므로 전통은 항상 유일한 규범인 성경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성경의 충분성과 동시에 성경의 배타성은 '오직 은혜'라는 고백의 다른 면이다. 즉 성경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선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충분성을 말한다.
5) 성령의 내적 조명
성경은 삼위 하나님의 자기 증거이지만, 우리는 특히 이것을 칼빈을 따라서 성령론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성령의 신뢰성은 하나님이 저자이심이 확실할 때 비로소 확립된다. 성경에 관한 최상의 증거는 그 안에서 직접 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성적 판단이나 논증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은밀한 증거(arcanumtestimonium Spiritus)이다. 그러므로 논변을 통하여 성경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수립하려는 자들은 필경 넘어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sermo)에서 자신에 관한 합당한 증인이라면, 그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internum Spritus testimonium)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인쳐지기 전에는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Ⅰ, ⅶ.4).
즉 교회의 권위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증을 제 아무리 한다 하여도 성경에 관한 확신과 권위의 수용은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5)
성령의 내적 증거는 칼빈이 전수한 좋은 선물이다. 성경은 자증하므로 성경을 증명이나 논거에 예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들은 이차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성경은 스스로 자증하지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성경의 말씀을 인쳐주신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심으로 스스로 분열될 수 없다(Ⅰ,ⅸ,2). 이와 같이 성경과 성령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성령은 성경에 당신을 계시한 그대로 지금도 계시하고 일하신다. 즉 성령을 통하여 성경이 우리 마음에 인쳐지면,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준다(Ⅰ,ⅸ.3).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배포하셨듯이, 동일한 성령을 통하여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확증하심으로 당신의 일을 완수하신다. 부활한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눅 24:27,45). 이처럼 주님이 성령의 조명을 배포하시는 방편은 말씀이다. 이 조명으로 우리의 마음은 밝아져서, 말씀을 깨닫는다. '내적 스승'(interior magister)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좌정하시기 전에는 말씀이 침투할 수 없다(Ⅲ,ⅱ,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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