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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SFC 날마다 주님과

사도행전 24장 10-23절

1.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10).

벨릭스가 총독으로서 치안 및 중요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한다. 이를 바울 사도가 인정한다. 이는 로마의 정권에 대한 인정과 같다. 그럼으로 사건 전말에 대한 성실한 변론을 한다.

 

2. 당신께 고백하리이다(14).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이단이라는 도(예수 믿는 기독교)의 방식을 따라서 조상들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섬긴다.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관점에서 구약과 율법과 선지자를 신뢰한다. 그 중심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있다. 그리고 부활 신앙이 자리잡는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다. 유대교로부터 이단이라 불리는 기독교의 도리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한다.

 

3.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17).

예루살렘 구제를 위한 것을 말한다. 갈2:9-10절에 의거해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영역을 구별하지만 상호 힘쓸 것은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루살렘 구제금을 모으는 것이다(고전16:2, 고후8:1,6).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복음안에서 교류함을 말한다. 이렇게 유대인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한 유대인의 결례도 행하고 어떤 소동도 만들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소동을 부르는 계획이 근거가 있다면 총독에게 바로 고발했을 것이고 유대인들을 소동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론한다. 근거가 없는 사건임을 변증한다. 오직 한가지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에 의거해서 재판을 받는다.

 

4. 바울을 지키되(23).

벨릭스는 사정을 확인하고 바울에게 협의가 인정되지 않음을 짐작하고 있다. 천부장에게 좀 더 확실한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리게 한다. 이런 조심함은 권력의 부족현상에 이른다. 빌라도의 경우가 그러하다. 벨릭스, 베스도로 이어지는 조심스러움이 결국 바울을 죄인으로 몰아가게 되지만 복음의 역사도 이어간다.

 

5. 나눔.

국가의 질서가 복음의 진전을 이루게 하기도 한다. 고난일 수도 있고, 법질서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볍게 생각할 대상은 아니다. 영원을 이루어야 할 현재의 중요한 정황이기 때문이다. 단지 복음에 진실하게 서 있는 무리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손을 바라볼 뿐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실 지 보는 것 뿐이다. 고난이 부정적이지 않고, 부패한 관리라도 모두 부정적이지는 않다. 모든 것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