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SFC 날마다 주님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17-34절
성찬과 적절한 분리
1. 본문의 번역
17 내가 명하는 것을 칭찬하지 못하는 것은 너희 모이는 것이 유익되기 보다는 오히려 해롭기 때문이다.
18 그래서 첫째 너희가 교회로 모일 때, 내가 너희 가운데 분리가 있음을 듣고 거의 그 일을(분리) 믿는다.
19 너희 가운데 분파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진실하다고) 증명이 되는 자들이 너희 가운데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20 그러므로 너희가 함께 모일 때, 한 자리에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는데,
21 이는 각자가 먹을 때에 자신의 음식을 먼저 가져가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배고프고, 다른 이들은 취하기까지 한다.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는가?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가?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너희를 칭찬할까? 이로 인해서는 내가 칭찬하지 못한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주로부터 받았는데, 이는 주 예수께서 넘기어 지던 밤에 떡을 집으시고
24 감사하시고 나서 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다. 이것을 너희가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25 그와 같이 식사 후에 역시 잔을 취하시고 "이것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의 잔이다. 이를 너희는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26 "이는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주가 오실 때까지 너희가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27 그러므로 합당하지 않게 주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해 범죄하는 것이다.
28 사람이 자신을 (합당한지) 증명하고 난 후에, 떡 덩어리로부터 먹고 잔을 마시라.
29 왜냐하면 (주의) 몸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형벌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30 그러므로 너희들 중에는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많고 잠자는 자들도 상당하다.
31 우리가 스스로를 살핀다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32 우리가 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것은 우리에게 연단이 되어서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함이다.
33 그러므로 나의 형제들아, 먹기 위해서 함께 모일 때에 너희는 서로 기다려라.
34 누가 배가 고프다면 집에서 먹어서 너희가 함께 모이는 것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 남은 일들은 내가 가는 그때 정리할 것이다.
2. 본문의 문맥과 고려점들과 질문들
1) 문맥과 구성
사도는 11:2절부터 14장까지 예배에 대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11장 전반부는 예배때에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는 일에 대해서 정리했다. 창조의 질서와 권위 그리고 자연과 본성에 의거한 여성의 단정함을 예배시에 표현하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성찬식 질서에 대해서 언급한다. 성찬식은 예배의 일부분이다. 성찬식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리가 일어나는 현실을 책망한다. 사도는 칭찬할 수 없다는 표현을 11:17, 22절에서 사용한다. 17-22절의 단락, 즉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현실은 칭찬받지 못한다고 직설한다.
그리고 나서 이후 23-26절에서 성찬의 의미를 성찬 제정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조명한다. 나아가 성찬의 의미 즉 주의 몸을 분별하고 이해하지 않고 밥 먹듯이 먹는 것에 대한 심판을 경고한다(27-32). 사도는 이런 잘못된 관행에서 오히려 분리되어야 마땅하다고 권한다. 세상과 다른 질서를 유지하도록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자신들을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서로 기다려서 함께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고 명한다. 성찬의 의미는 복음이다. 복음의 정신이 보존된 성찬 예식이 되도록 가난한 자들을 기다려서 먹도록 권한다(33-34).
2) 고려점들
17절 11:2절에서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칭찬했다. 그러나 여기 성찬과 관련해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즉 부자와 가난한 자의 분리의 문제는 칭찬보다 책망을 한다. 고린도 교회의 현실을 소개하는 처음과 마지막(17,22)을 "칭찬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교회로 모이는 모임이 선하지 못하고 악할 수 있다. 어떤 경우인가?
18-19절 분쟁의 내용은 가진 자와 빈궁한 자의 구별이다. 그리고 파당이 있어야 마땅한 것은 잘못된 구별 즉 분쟁을 만드는 성찬의 시행을 정죄하는 무리들로 있어야 한다는 당위이다. 가진 자와 빈궁한 자가 서로 기다려서 함께 성찬에 참여함으로 성찬 즉 복음의 의미를 이루는 무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즉 교회는 그래야 한다.
20-22절 가진 자와 빈궁한 자의 구별이 생기는 현실을 고발한다. 사도가 이를 칭찬 할 수 없다.
23-26절 성찬 제정의 말씀이다. 마26:26-29, 막14:22-25, 눅22:14-20 참고. 이것을 언급하는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가진 자와 빈궁한 자의 구별로 치닫는 성찬 관행이 얼마나 성찬의 본질, 제정과 다른지를 보이려고 한다. 먹는 것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통해서 기억할 것을 상기시킨다. 기억은 말씀이 현실화되어 구원을 일으키는 출발이다. 성찬은 복음 전파와 연결된다(26).
27-32절 성찬에 참여하는 자의 자세는 주의 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먹고 마셔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심판의 형벌이 있다. 물론 그것이 궁극적인 정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32). 따라서 성찬의 오용은 궁극적 정죄와 연결된다. 따라서 성찬은 복음이다. 종교개혁이후 개신교회가 교회의 참된 표지로서 말씀과 성찬을 언급했는지의 이유이다. 성찬이 복음이다.
33절 고린도 교회 구성을 보면 학벌이나 사회의 귀족 출신들이 많지 않다(1:26-28). 그렇기에 교인중에는 종들이나 노예도 있다. 저들은 스스로 시간을 지키거나 음식을 가지고 올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넉넉한 살림과 자유자들은 기다려야 한다. 그럼으로 한 몸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
34절 성찬의 식탁이 단지 먹는 모임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심판을 받는다. 무서운 경고이다. 가장 거룩한 자리가 가장 진노의 자리가 된다. 거룩의 특징이기도 하다.
3) 질문들
* 왜 고린도 교회의 모임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해롭다고 합니까?
*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19)
고린도 교회가 바울, 아볼로, 게바 파등으로 나누어진 분파와 더불어서 가진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분파도 있다.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적인 이유로 나누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파들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구별이 생기는 것은 옳다. 즉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여 바르게 하는 무리들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교회의 분리로까지 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결국 분리가 될 것이다. 전혀 나누지 말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성찬이 단지 먹는 자리로 전락된다면 복음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성찬이 주를 죽으신 몸과 피를 기억함으로 복음을 기억하는 것인데, 복음을 먹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 즉 말씀으로 산다. 성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성령을 통해서 충만하게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함께 먹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먹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이렇게 희생함으로 함께 복음의 은혜를 누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떤 적용점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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