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의 번역
23 모든 것이 허락되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니다.
24 누구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라.
25 시장에서 파는 모든 것을 양심때문에 확인하지 말고 먹어라.
26 땅과 그 가운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기 때문이다.
27 불신자중에 어떤 이가 너희를 초대하였기에, 너희가 가기를 원한다면 너희에게 차려진 모든 것을 양심때문에 어떤 것도 묻지 말고 먹어라.
28 만약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이것이 신전제물이다" 라고 말한다면 너희는 그것을 알려준 자와 그 양심 때문에 너희는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하는 것은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이의 양심인데, 이는 나의 자유가 다른 이의 양심에 의해서 판단받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30 만약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한다면 내가 감사한다는 것으로 인해서 누가 나를 신성모독했다고 하겠는가?
31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모든 것을 행하라.
3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나 비난 받는 자가 되지 말라.
33 마찬가지로 나도 모든 것으로 모두를 기쁘게 하여 내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구원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2. 본문의 문맥과 고려점 그리고 질문들
1) 문맥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과 관련해서 그리스도인의 권리 혹은 자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권리와 자유는 복음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다. 바른 지식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지만 다른 이를 잘 세우고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이의 양심이 중요하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삶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삶으로 규정한다. 그럼으로 우상의 제물에 대한 구체적인 결론에 이른다.
2) 고려점들
23절 모든 것이 가하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구호이다. 복음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지식에 근거한 구호이다(참고 6:12). 그러나 사도는 이 구호가 유익이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안된기도 한다고 교정한다.
24절 근본적인 관점은 자기 유익이 아니라(권리나 자유) 남의 유익이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길이다.
25절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우상의 제물인지를 묻지 말고 구입하여 먹으라고 권한다. 정확히 구분하기 힘들다.
26절 묻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지식에 근거한다.
27절 불신자의 초청에도 묻지 말고 먹는다. 초대한 자의 양심을 위해서.
28절 제물이라 고발이 있으면 고발한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라.
29절 양심을 언급함은 24절의 원칙이 보존된다. 즉 자기 양심이 아니라 다른 이의 양심이 중요하다.
30절 감사함으로 먹는 음식에 방해(신성모독)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시장 물건과 초대한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한다.
31절 모든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감사함으로 먹고, 다른 이의 양심을 고려한 삶을 적용한다.
32-33절 누구에게나 걸림이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사는 목적은 그들의 구원이다.
11:1절 바울의 태도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고, 따라서 그 태도를 고린도 교회가 본받으라고 명한다. 주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임에도(9:14)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인가?
3) 질문들
* 우상의 신전에서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이 우상 숭배 즉 귀신과의 교제로 귀착되기에 금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선택의 문제이다. 시장에서 산 물건이나 불신자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어떤 모습인가?
3. 남의 유익을 구하라(24)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마6:33). 그런데 그리스도를 본 받은 사도는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같다는 논리적 결론이다. 왜 그렇까?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와 감사의 나라이다. 즉 권리 주장의 나라가 아니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강한 자들이 잃어버리고 낮아지는 나라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의는 연약한 자들의 양심을 존중하는 나라이고, 그것이 바로 강한 자들의 권리주장에 대한 포기를 요청한다. 그러므로 권리 주장은 자기 유익과 이익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기 유익이 아니라 다른 이의 유익을 고려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고려한 행동이고, 결국 다른이의 양심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
나는 남의 유익을 위해서 어떤 권리를 포기하고 조심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참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나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서인가? 유익의 근거는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범죄에도 죄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행동이 없는가? 자기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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