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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SFC 날마다 주님과

이사야 9장 1-7절

2013년 12월 23일 SFC 날마다 주님과 묵상 이사야 9장 1-7절

1. 본문의 문맥
유다 왕 아하스왕 시절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 나라의 연합국이 쳐들어온다[사7: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고 다윗의 가문을 폐하려고 시도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 전역이 연합국에 의해서 점령당한 현실이다. 이때에 아하스 왕은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하심]보다는 앗수르를 의지해서 난국을 헤쳐나가려고 머리를 쓴다. 앗수르에 의해서 아람과 북왕국을 물리치기는 하지만, 그러나 유다도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와중에서도 거듭 임마누엘을 의지하도록 권면한다[사8:10]. 구체적으로는 증거의 말씀과 율법을 따르는 것이다[8:20]. 그러나 유다도 이스라엘도 이를 무시한다. 그래서 증거와 율법을 봉함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와 유다에 미치는 흑암이다. 전쟁과 패배, 포로의 환난과 흑암과 고통이다[8:22]. 
이런 고통과 흑암의 자리에 어떤 소망이 있을까? 소망은 없는가? 이사야가 외친 임마누엘의 소망이 효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 있다. 임마누엘로 태어날 아기를 통해서 유다의 진정한 소망이 생겨남을 9장은 말하고 있다. 

2.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1]
예수님의 공사역의 시작을 갈릴리에서 시작함의 근거가 된 본문이다. 마4:15-16절에서 인용된다. 흑함에 빛이 비추게 된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 이방의 노략이 심한 어두움의 곳에 빛이 온다. 나아가 빛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쟁의 승리로 인한 나라의 번성이다. 그리고 평안을 통한 추수를 즐기며, 적들을 쳐 부수면서 얻은 전리품을 나누는 즐거움으로 나타난다. 흑암의 갈릴리가 어떻게 이런 소망의 자리로 변화되었는가? 

3.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6]
한 아기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흑암에 빛이 온다. 바로 약속된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의 효력을 유다 왕 아하스는 신뢰하지 않았다. 앗수르를 더 의지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람을 의지하고, 남 왕국은 앗수르를 의지한다. 결국 둘다 흑암으로 나아갔다. 이제 소망은 옛적에 주어진 복음의 소식이다. 바로 임마누엘을 신뢰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보다 더 소망스런 것이 세상에 없다.
그가 다윗의 통치를 어깨에 메고 공평과 정의로운 통치를 펼칠 것이다. 그리고 평화[샬롬]를 가지고 오실 것이다. 전쟁과 패배와 포로로 어수선한 흑암의 땅에 임하는 소망의 빛은 오직 임마누엘의 아기를 통해서만 온다. 바로 성탄의 주님을 통해서 온다. 

자본과 세상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어수선한 삶에 참된 빛은 어디서 오는가? 오직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밖에는 없다. 주님 빛으로 오소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받고 의지하기를 소원합니다. 내 삶에 모든 난관에 참된 소망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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