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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SFC 날마다 주님과

전도서를 마치면서

1. 전도자의 질문은 답변이 되었는가?
전도자는 이렇게 질문하면서 전도서를 시작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를 다 읽고 묵상했다.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때와 특히 죽음 앞에서 삶과 세상이 불합리한 현실을 탄식한다. 헛되다의 실체이다. 헛됨은 이해가 되지 못함을 말한다. 신비롭다는 좋은 표현일 것이다. 사람이 창조주가 아니기에 제한이 있음을 철저히 깨닫고 있다. 그래서 창조주가 주신 기회와 때를 따라서 그가 제공해 주신 선한 의도를 즐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을 먹고 마시고 선을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몫이다라고 표현한다. 전도서는 이 표현을 중요 단락들의 결론으로 삼는다(2:24, 3:12-13..., 5:18-20, 8:15, 9:9).
따라서 사람의 수고를 통해서 무엇인가 엄청난 것(명예, 부, 자손의 번영 등)을 누리려고 하지 말고 주어진 때에 선한 즐거움으로 사는 것이 유익하다고 답변을 한다.

2. 지혜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수고하는 가운데 유익한 삶을 살도록 돕고 그런 삶을 보장하는 좋은 방식이 지혜이다. 지혜자가 있음으로 삶이 부요롭고, 환경 즉 나라와 사회가 안전하게 된다. 이 지혜도 한계가 있다.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형통과 곤고를 섞어서 그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한 것 앞에서는 무력하다. 형통만이 있게 하는 지혜는 땅위에서 절대로 없다. 어떤 인생이라도 곤고가 있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가느냐가 참된 지혜이다.
이런 지혜를 무너뜨리는 것이 죄이다(9:18). 죄는 악이고 선을 무너뜨리는 실체이다.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나타난다. 지혜가 세우는 것이라면 어리석음은 무너뜨리는 것이다. 성을 무너뜨리고 삶을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그 지혜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심판을 통과하게 만드는 지혜이다.
시편1편은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진정한 형통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악인의 형통도 있기 때문이다(시37:7). 참된 의인의 형통, 즐거움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 내는 것이다.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5-6). 심판까지 통과해 내는 형통을 받은 자가 진정한 복있는 사람, 혹은 선한 사람이다. 선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해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보내는 짧은 나그네 길에서 하는 우리의 수고가 유익함은 참된 형통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기고 그 율법을 묵상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유익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복음 즉 복이고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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