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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을 지키자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뜯어낼 달력도 없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시간을 살고 있다. 연말이기에, 한 해를 정리해야 하기에 다들 긴장된 분위기이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고과평가를 하여 진급이며 회사에서의 퇴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상술은 한껏 들뜬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 모든 근심걱정을 애써 잊으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망년회가 그것이다.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들뜬 분위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연말을 어떻게 보내어야 할까? 연말도 연말이려니와 마지막 시대를 사는 지혜가 어떤 것일까?

교회력에 의하면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있다. 성탄절 이전의 4주일을 ‘대강절’이라고 부른다.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이다. 고대 교회는 이방축제였던 태양 숭배일을 성탄절을 바꾸어 지키기 시작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오심, 즉 성육신을 묵상하면서 성탄절 당일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로 확장하였다. 이것이 4주간의 대강절로 자리잡았다. 대강절은 금식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로 자리잡았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회개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강절에는 이런 저런 장식을 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대강절 화환’이다. 그 화환 중간에 촛대를 네 개 만들어 초를 꽂아 놓는다. 매 주일마다 하나씩 촛불을 켜서 마지막 주에 네 개의 초 전부에 불을 다 밝힌다. 화환 가운데 가장 큰 다섯 번째의 촛대를 만들어 놓고 성탄절 당일에 그 초를 켜기도 한다. 이렇게 촛불을 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이 빛은 동방의 점성술사들이 별빛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둠 속에 빛이 비췄다. 사망이 왕노릇하는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생명으로 이 땅에 오셨다. 대강절은 빛들의 절기이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성탄 당일만 축하하는 것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대강절은 우리에게 기다림에 관해 묵상하게 한다. 대강절에 우리는 무엇을, 아니 누구를 기다리는가?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은 과거의 아기 예수님만이 아니고,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만도 아니다. 대강절에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오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맞이한다. 삼중적인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교회는 대강절에 전체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신자는 성찬상에서 전체 그리스도를 받듯이, 대강절에서도 전체 그리스도를 받는다.

올해는 전세계적으로 성탄절 축하를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최근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파리테러의 영향 때문이다. 이제는 테러가 일상화되었고,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파리 테러의 파장 중에 하나가 성탄절을 축하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축하하는 것이 이슬람을 자극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탄캐롤이나 산타클로스가 은근슬쩍 물러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 성탄절을 제대로 축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성탄절축하는 너무 상업적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오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온전히 낮추셨다는 것을 우리가 애써 외면하지 않았는가? 성탄절을 검소하게(?) 지킬 때에 자신을 낮추고 모슬렘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파리테러로 인해 올 해 연말은 더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신자에게는 세속적인 시간이 아닌 거룩한 시간이 있다. 교회력이 그것이다. 교회력에서는 12월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교회력에서는 대강절과 성탄절이 한 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교회력의 흐름을 따르는 교회와 신자는 연말에 이미 년초를 산다. 대강절은 신자인 우리가 기다리는 자임을 보여준다. 대강절은 주님의 오심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주의 백성을 찾아오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자는 기다릴 뿐만 아니라 기대가 넘친다. 대강절에 신자는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그리스도를 누린다. 성탄절 당일 하루만 지키는 것보다 대강절을 앞세워 지킨다면 교회는 큰 유익을 누릴 수 있다. 대강절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주로 상록수 가지로 화환을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사철 생명을 주신다는 뜻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초의 색깔도 다양하게 했는데, 개신교회에서는 자색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의 초를 넣어서 성탄절 당일에 켜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초라는 것이 절간에 켜져 있기에 좀 어색해하는데 너무 터부시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뭐든지 다 상징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고요. 단순함이 필요하겠고, 성경적인 원리를 담는 미학이 필요할 것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가온동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온생명교회의 안재경 목사님께서 페이스북에 쓰셨던 '대강절을 지키자'라고 하는 글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아직 강단에 화환 장식을 하시지 않고, 설교를 통해서 아니면, 다른 방식을 통해서 강조하신다고 하셨습니다.